기계 유씨의 재실 부운재의 전경
신태사 신몽삼의 묘
파평 윤씨의 재실 봉강재의 내부 전경
고려시대 삼사(三師)의 하나로 정일품의 벼슬에 해당하는 태사(太師)를 3명이나 배출한 마을이 있다.
오랜 역사 속에 선비정신과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이곳은 바로 경북 포항시 기계면이다.
기계면은 포항에서 청송과 안동 등 북부 내륙지방으로 통하는 31번국도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학산·운주산 등 높고 험함 봉우리가 사방을 호위하고 있다.
예부터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 이 지역에서는 특히 유태사 유삼재, 신태사 신몽삼, 윤태사 윤신달 등 기계 삼태사로 불리는 이들의 숨결을 만날 수 있다.
이 세 명의 태사는 대체 기계면과 어떠한 인연을 맺고 있을까?
유태사 유삼재는 기계유씨의 시조로 신라시대에 6두품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관등인 아찬 벼슬을 지냈다.
유삼재의 묘소는 기계면 미현리에 있다.
신라가 쇠하고 그의 후손 유의신이 고려에 불복하자 태조 왕건이 그를 기계 호장으로 삼았고, 이후 그 후손들은 기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묘소와 함께 선조의 덕을 추모하고 후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기계 유씨의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부운재를 빼놓지 말고 들러봐야 한다.
부운재와 관련, 숙종15년(1689) 경주부윤 유하겸이 마을 어른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계 유씨 시조묘를 찾아 이듬해 표석을 세웠다. 이를 시작으로 후손들이 증축을 이어왔다.
또 부운재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덕을 쌓고 효를 실행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탁기가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하면서 세운 신도비도 있다.
※ 신도비란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의 공적을 흠모하는 뜻을 담아 무덤 근처나 큰길가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기계 유씨의 대표적 인물은 사육신의 한사람인 유응부, 영조 때 노론의 원로로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 등이 있다.
신태사 신몽삼은 영산·영월 신씨의 시조로, 묘는 기계면 화봉리에 있으며 1918년 발견됐다.
묘비에는 ‘태사공영주신지묘’라고 적혀 있고 배위에 정부인 문주류씨라 기록돼있다.
신몽삼은 고려 명종 19년(1189)년에 급제해 보문각 대제학 검교 태사 영원부원군에 올랐다.
윤태사 윤신달은 파평 윤씨의 시조로 고려태사 벼슬을 지낸 인물이다.
윤신달은 동료인 신숭겸, 홍유 등과 더불어 918년 궁예를 축출하고 새로운 국왕으로 왕건을 추대했다.
왕건의 고려 건국에 대한 공로로 2등 공신에 책훈돼 윤신달에게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직이 내려졌다.
기계면 봉계2리 운주산에 위치한 윤태사의 묘소는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후손들은 이곳에서 해마다 음력 10월 1일 추향제를 열고 있다.
이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조선 영조 때 창건된 재실 건물인 봉강재는 28세손인 윤광소가 처음 건립했으며 이후 1762년과 1763년에 수리됐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1호로 지정됐으며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구조재의 짜임새가 세심하게 이뤄진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1868년 내려진 서원철폐령으로 부서진 봉강서원 자리에 세워진 유허비 역시 파평 윤씨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대표적 문화재로 손꼽힌다.
특히 봉강재 입구에서 묘소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비밀의 정원 같은 산속 풍경이 보인다.
이곳을 찾으면 볼 수 있는 또 다른 눈요기이다.
작은 연못과 그 위에서 노는 오리들이 엄숙하기만 했던 봉강재를 푸근한 쉼터로 바꿔주기도 한다.
이처럼 뛰어난 자연 절경과 문화재가 있으며,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한 기계면은 각 동네마다 세월의 흔적을 지닌 채 자손들의 복을 빌고 있다.
조상들의 강인한 정신을 이어받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민중들이 숨 쉬는 곳, 이곳에서 삼태사와 교감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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