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속으로

말띠 노부부! 그들이 살아온 세상속으로~

이름모를 들꽃 2014. 1. 22. 14:00

말띠 노부부 그들이 살아온 세상!

 

1942년 여름이 막 시작될 즈음 숲으로 둘러싸인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우리 엄마는 태어났다

3대독자에 종손인 집안의 맏이가 태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극정성 부처님께 삼신에게 기도드려 얻은 첫 손주가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며느리는 죄인이었던 시절이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온갖 구박에도 말한마디 할 수 없었던 그 시대

어린딸을 품에 안은 며느리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같은 시각! 고개 너머 이웃마을에서는 위로 4명의 형을 둔 막내 아들이 어른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으며 백일잔치를 하고 있었다.

안고 업고 부잣집 막내아들은 오월의 햇살마냥 눈부시게 자랐다.

우리 아버지이시다.

 

외할머니는 그 뒤로 딸 셋에 아들하나를 더 얻으셨다. 하나 아들은 금이야 옥이야 길러졌지만

딸넷은 언제나 찬밥이었다. 어린 딸들을 부엌 아궁이에 옹기종기 둘러 앉혀 놓고 식은 밥 챙겨 먹일때가 그래도 제일 행복했다는 외할머니~

호랑이 같았던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와 따뜻한 말 한마디 없는 남편의 무관심속에 며느리의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갔다. 외할머니는 다들 잠든 시간이면 뒤뜰에 나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시고는 깊은 한숨을 내 쉬곤 했단다. 외할머니의 그 애처로운 뒷모습은 엄마의 가슴에도 엉어리를 남겼다.

그리고 몇해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었던 엄마를 잃은 슬픔은 어린 딸들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고 충격이었으리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해 막내이모의 나이 겨우 세 살!

그때부터 열다섯 큰언니는 어린 동생에게 엄마가 되었다.

한달에 열 번이 넘는 제사에 종갓집 큰 살림에 이모들까지 열다섯 소녀에게는 버겁고 힘든일

이었지만 엄마는 조금씩 강해졌다.

그리고 얼마후 외할아버지는 엄마보다 겨우 세 살 많은 어린신부를 만나 재혼했다.

 

부잣집 막내아들인 아버지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기억속엔 아버지가 만들어 낸 희미한 영상만 있을뿐 할머니는 없다.

그때부터 막내아들은 형수들 손에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해 뒤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모든걸 잃어버린

폐허가 된 터전에서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제일 큰 형인 큰 아버지가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심장마비로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다시 내려 앉은 것은 더 한순간이었다. 부잣집 귀한 막내아들이 천덕꾸러기가

된것도 한순간이었다.

 

 

그 시대를 겪은 많은 이가 그렇듯 말할수 없이 아픈상처를 간직한채

격동의 세월을 지나 두 분이 만났다. 나의 어머니고 아버지이시다.

딸부잣집 맏이이며 아들부잣집 막내이다.

어머니는 키가 크고 아버지는 키가 작으시다.

어머니는 피부가 뽀얗고 아버지는 까무잡잡하시다

두분은 말띠 동갑내기이다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부부가 되어 다른 듯 닮은 듯 살아오신 세월이 50년이 넘었다.

아들셋 딸셋 손자손녀만 열둘을 보았다. 달라진거라곤 젊어서 아버지 앞에서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셨던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과 차려주는 밥상만 받으시던

아버지가 콩나물을 다듬고 계시다는 것^^

 

2014년 말띠해를 맞이하고보니 문득 엄마 아버지의 살아온 세월들을 말하고 싶어졌다.

드라마나 소설속에서 일어 났을 것 같은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수많은 일들을 이겨내며

오늘에 서신 두분!

엄마 없이 자랐을 두 분 유년시절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나이에도 `엄마~~` 하고 부르면 울컥 눈물이 먼저 고이는데 외롭고 힘들때마다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까?

돌아가신 할머니들에겐 또 얼마나 가슴 저리도록 아프고 그립고 사랑하는 아들 딸이었을까?

단지 내 엄마이고 아버지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으니 참 철이 없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의 기쁨을 함께했고 6.25를 겪어야했던 세대!

폐허가 된 땅을 일구어낸것도 그들이었으며 초대 대통령부터 18대 현 대통령을 직접 지켜본것도 그들이다.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마을마다 네잎크로바 내걸고 새마을운동을 이룩해낸 세대였으며 보릿고개를 지나고 격동의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한 세대이기도 하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첨단 사회를 함께하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그들은 역사의 산증인이며 주인공이다.

휴대폰 조작에 서툴러도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몰라도 그들은 인생에 백과사전이다.

지식은 인터넷 세상에 넘쳐나지만 어디에도 그들을 따라갈 지혜는 없다.

새삼 칠십이 훌쩍 넘은 어머니 아버지가 애잔하게 다가온다. 또한 그들이 남긴

세월의 흔적 앞에 한없이 겸허해지고 숙연해진다.

한번도 해보지 못한 말 이번 설엔 꼭 해야지.

어머니 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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